펀슈머 :: 괴식에 빠진 유통업계
유통 업계가 새로운 맛에 도전하는 MZ세대(1980~2000년대생)를 겨냥해 괴식(怪食)에 빠졌습니다.
식욕을 억제하는 파란색과 초록색은 되도록 식품과 포장에 넣지 않는다는 금기를 깨고 이색 제품을 앞다퉈 출시하고 있습니다.
괴식은 인터넷 밈(유행 콘텐츠)으로 확산하며 소비자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퍼지고 있습니다.
일명 ‘도른자’ 마케팅이 화제로 머리가 ‘돌은 자’라는 의미로 그만큼 기발하다는 뜻입니다.
실제 출시될 것 같지 않은 독특한 상품들을 상상으로나마 즐길 수 있도록 콘텐트로 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중에는 좋은 반응을 얻어 실제로 출시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짜든 진짜든, 상상이든 현실이든, 재미있는 즐길 거리를 원하는 MZ(밀레니얼+Z세대) 세대가 이들의 타깃입니다.
유통업계가 ‘괴식 트렌드’에 주목하며 파격적인 신제품을 잇달아 출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안선영 롯데중앙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신제품이 주목받기 위해서는 맛과 가격에 더해 독특한 비주얼이나 이국적인 맛 등의 개성까지 갖춰야 한다”며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색 식품’이 유행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소비자들이 새롭고 재미있는 제품에 열광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특히 요즘의 MZ 세대는 무엇보다 재미를 가장 중시합니다. 이른바 펀슈머(fun+consumer)입니다.
이는 재미있는 현상이나 사례를 적극적으로 퍼 나르며 공유·인증하며 즐기는 인터넷 밈(meme)문화와 연관이 큽니다.
실제 출시되기 어려울 만큼 기상천외한 아이디어일수록, B급에 가까울수록 인기는 올라갑니다.
파맛 첵스, 상추맛 바나나우유처럼 과거라면 ‘괴식’ 대접을 받았을 음식들이 재미있다는 이유로 호감을 얻고 있습니다.
시각적 충격으로 어필하는 ‘이색 상품’
롯데리아가 출시한 ‘지파이’의 성공 요인은 ‘괴식’스러운 시각적 충격입니다.
‘치킨 너겟은 한입 크기’라는 기존의 상식을 깨는 얼굴만 한 크기가 ‘먹기보다 인증샷이 먼저’인 ‘MZ세대(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의 합성어)’에게 정확하게 먹혀들었습니다.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지파이와 얼굴 크기를 비교하는 인증샷이 유행하며 10일 만에 100만 개가 판매되었습니다.
안 연구원은 “대만에서는 일반적인 먹거리인 널따란 치킨파이가 한국 소비자에게는 독특한 비주얼로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실제로 출시 전부터 ‘얼굴만 한 치킨 디저트’로 상당한 화제를 모았다”고 했습니다.
롯데리아는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지파이와 얼굴 크기를 비교하는 인증샷을 올리면 증정 혜택을 주는 SNS 이벤트도 진행했습니다.
시각적 충격을 강조하는 신제품 출시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곳은 편의점 업계입니다.
CU 편의점이 출시한 ‘올블랙치킨버거’는 빵부터 패티까지 모두 검은색으로, 얼핏 보면 실수로 태웠거나 부패한 음식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식욕을 억제하는 검은색과 파란색은 되도록 식품과 포장지에 넣지 않는다’는 유통업계의 불문율을 깬 것입니다.
GS 편의점이 내놓은 ‘황금왕돈까스’는 세로 21㎝, 가로 15㎝의 압도적 크기로 소비자의 시선을 사로잡아 한때 도시락 매출왕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유행하는 이색 식품 키워드에 즉각 반응
새로운 이색 식품이 등장하면 유통업계는 발 빠르게 대응해 비슷한 모티브의 신제품을 출시합니다.
대만에서 넘어온 흑당밀크티가 대표적입니다.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출시한 ‘아메리치노 흑당(엔제리너스)’ ‘흑당 버블티(이디야)’ 등 유사 음료를 시작으로
흑당 과자, 흑당 크림빵, 흑당 샌드위치 등 흑당이 들어간 온갖 신제품이 쏟아졌습니다.
심지어 흑당 닭강정까지 출시되자 네티즌 사이에서는 “이제 흑당 김치, 흑당 밥만 나오면 되겠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유통업계에서는 이러한 트렌드가 2014년 ‘허니버터칩 광풍’을 시발점으로 본격화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해태제과에서 출시한 허니버터칩이 전국적인 품귀 대란을 빚을 정도로 흥행하자, 다른 제조사에서 출시한 유사 상품까지 덩달아 ‘허니버터 특수’를 톡톡히 누렸던 경험 탓이라는 것입니다.
이후 2017년 와사비 열풍이 불자 ‘눈을 감자 와사비맛(오리온)’ ‘와사마요 볶음면(삼양)’ ‘와사비톡(페리카나)’이 잇달아 출시됐고,
2019년에는 영화 ‘극한직업’의 ‘수원왕갈비통닭’에서 모티브를 얻은 ‘왕갈비통닭볶음면(삼양)’ ‘왕갈비맛 통닭스낵(이마트)’ ‘수원왕갈비치킨김밥(CU)’ 등이 유통가를 휩쓸었습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젊은층 사이에서 이슈가 되려면 유행 코드에 편승한 신제품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며
“다만 유행이라는 말 그대로 지속가능성은 떨어지기 때문에, 전체 계층이 타깃인 제품과는 별도의 전략으로 접근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이스크림에서 젤리로, 치킨에서 과자로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푸드비즈랩은 2019년 푸드 트렌드 중 하나로 ‘펀슈머’를 꼽았습니다.
‘재미(fun)’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인 펀슈머는 소비자가 제품 소비 과정에서 재미를 추구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유통업계에서는 오랫동안 사랑받은 스터디셀러 식품을 변형해 이색 식품으로 출시하는 전략으로 나타납니다.
죠스바에서 파생된 ‘죠스바젤리’나 메로나에서 파생된 ‘메로나스파클링’ 등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업계는 신제품 출시의 부담을 덜고, 기존 소비자층에 의한 입소문 확산이 쉽다는 점에서 이러한 장르전환을 활발하게 시도하고 있습니다.
푸드비즈랩에 따르면, 원제품이 빙과류일 때 장르전환 효과가 가장 큽니다.
온라인 구전을 통해 이슈를 만들어, 단기간에 집중적 판매를 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제품 기획 단계에서부터 마케팅 부서·대행사 등과 긴밀하게 협력합니다.
다른 회사와 협업을 통해 더욱 파격적인 장르전환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오리온과 맘스터치는 협업을 통해 ‘치킨팝 땡초찜닭맛’과 ‘매콤소이팝’을 각각 출시했습니다.
닭강정 맛 과자인 치킨팝에 진짜 치킨소스를 입힌 것입니다. 이렇게 개발한 치킨팝 땡초찜닭맛을 실제 치킨에 토핑한 것이 맘스터치의 매콤소이팝입니다.
김효은 오리온 마케팅팀 과장은 “치킨팝과 맘스터치 모두 10대 학생에게 인기가 높다는 특성이 있어 협업 상품을 개발하게 됐다”며
“치킨팝 브랜드가 재출시 7개월 만에 2000만 봉 팔렸는데, 이러한 성과엔 맘스터치와 협력을 통해 출시한 이색 식품도 상당한 요인이 됐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대세는 펀슈머
대세는 펀슈머 : 첵스 팥맛
농심 켈로그가 첵스 팥맛을 출시했습니다. 전북 고창에서 생산한 국산 팥 100%를 사용하고, 새알심을 연상시키는 하얀 마시멜로를 넣었습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만들어준 추억의 단팥죽 맛을 떠오르게 한다는 취지입니다.
속시원한 입담으로 알려진 배우 김영옥과 외국인 DJ들이 논밭과 경운기를 배경으로 “첵팥, 힙합, K팝” 등의 랩을 하며 광고하고 있습니다.
첵스 팥맛은 지난해 품절 대란을 일으킨 첵스 파맛의 후속 제품입니다.
서지혜 농심켈로그 마케팅 팀장은 “전통 식재료인 팥의 영양과 맛을 살린 한국적인 시리얼”이라며 “복고에 빠진 20~30대의 입맛을 사로잡고 재미와 흥미를 자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대세는 펀슈머 : 팔도 왕뚜껑 라임향
팔도는 최근 소셜미디어(SNS)에서 라임 왕뚜껑 라면을 선보였습니다.
라면에 라임향을 더해 상큼하고 개운한 국물 맛을 냈다고 합니다.
팔도는 지난 5월엔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CU와 손 잡고 우유 라면도 출시했습니다.
라면에 우유를 부어 먹는 컨셉으로 서울우유 분유를 넣은 수프가 일반 라면 수프와 함께 들어있습니다.
팔도는 같은 달 팔도비빔면 양념장의 새콤 달콤한 맛을 옥수수 과자에 더한 팔도비빔침을 내놨습니다.
대세는 펀슈머 : 소다향 호빵
편의점에서도 이색 PB(자체 브랜드) 음식이 나오고 있습니다.
GS25는 파란색 커스타드 크림을 넣은 소다향 호빵을 선보였습니다. 소다향 아이스크림과 맛이 비슷합니다.
GS25의 호빵 매출 비중은 2016년 단팥이 54%, 비(非)단팥이 46%였는데 지난해는 단팥이 31%, 비단팥이 69%로 역전했습니다.
GS리테일 관계자는 “몇 년 사이 소비자 입맛이 크게 변했다”며 “새로운 경험을 쫓는 MZ세대를 위해 소다향 호빵을 출시했다”고 했습니다.
괴식, 팔려고 만든 제품일까
까먹치킨과 같은 괴식 열풍은 이미 유통업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금기로 여겨지던 파란색·녹색 제품은 이미 시중에 널리 유통되고 있고 민트초코는 올 초 품귀현상을 빚었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맛에도 괴식의 요소를 포함한 제품이 활발히 출시되고 있습니다.
농심켈로그는 ‘파맛’에 이어 ‘팥맛’ 첵스를 선보였습니다. 팔도는 왕뚜껑에 라임을 첨가한 ‘라임 왕뚜껑’을 내놨고 편의점에서는 ‘소다맛 호빵’까지 판매중입니다.
이들 제품의 목표는 ‘판매’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시장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마케팅 전략’에 가깝습니다.
코로나19 이후 가공식품·배달음식 시장은 급격히 성장했습니다.
신규 브랜드와 제품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유통 채널 역시 자체브랜드(PB) 상품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시장의 주요 소비자인 MZ세대는 이들의 ‘새로움’에 관심이 많습니다.
기성 브랜드가 이에 대응하기 위해 내놓은 제품이 괴식이라는 설명입니다.
실제로 시중에 판매 중인 괴식 제품 대부분은 스테디셀러의 ‘파생형’ 제품입니다.
제조사는 괴식 메뉴를 통해 노후한 브랜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킬 수 있습니다.
더불어 신규 브랜드·제품의 홍수 속에서도 기존 제품의 가치를 유지합니다.
이미 잘 팔리고 있는 제품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만큼 가존의 룰을 깨더라도 실패 위험을 줄일 수 있습니다.
결국 괴식 제품은 최소한의 ‘안전’을 지키면서도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는 최상의 전략인 셈입니다.
업계에서는 앞으로도 괴식 제품이 활발히 출시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괴식 제품이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업체는 거의 없다.
대부분 제품이 한정판으로 출시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라며 “다만 괴식 제품은 MZ세대의 브랜드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효과가 크다.
앞으로도 특이한 제품의 출시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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